2009년 10월 25일 일요일

005. 1945. 03. 24. Buried last stage

-004. 1944. 09. 17. Fight for Our Conceit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4편에서 예고한 바와 같이 이번에는 2차대전 기간 동안 미국이 유럽전선에서 마지막으로 참가한 전투인 작전명 버시티를 다루겠습니다.
여하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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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2월, 연합군은 히틀러의 꿈을 위시한 도이칠란트군의 대규모 반격을 이를 막아내고 1945년 03월 경, 라인강 서부를 정리합니다. 이 와중에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의 영국 제21집단군은 3월 9일자로 라인강 도하를 위한 작전-작전명 플런더-Operation Plunder- -을 시행합니다.

당시 라인강 서부에서 도이칠란트 본토침공을 위해 대기하던 연합군 병력은 영국군 11개 사단, 6개 독립여단, 캐나다군 8개 사단, 미군 11개 사단. 대략 128만명이군요.
이거 말이 128만명이지 현대 한국군 평시 정규 병력이 약 60만여명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면...ㄷㄷㄷ
게다가 도하 지원을 위해 대기중이던 공병의 숫자만 5만 9천 명이던 판이었습니다. 여기에다가 보급량도 실로 엄청납니다. 그냥 영국, 미국군 각 군 보급품 숫자만 살펴 봐도...
영국 제2군 11만 8천톤, 미군 제9군 13만 8천톤[...]

여튼 이런 건 제쳐둡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도이칠란트가 불쌍해집니다 ㅠ

여튼간, 연합군 수뇌부는 라인강 도하에 앞서 이 작전의 성공을 확신하기 위해서 공수부대의 투입을 결정합니다. 당시 대기중에선 투입선상에 오른 공수사단 중 영국군 1공수사단은 마켓-가든 작전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어 작전투입은 불가능합니다.
그리하여, 작전명 오버로드 이후 늘 최전선에서 활약하던 두 공수사단, 미군 82, 101공수사단과 신참사단 13, 17공수사단, 영국군 6공수사단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작전이 하달됩니다.
그 이름하며 작전명 버시티-Operation Varsity-, 그리고 이들의 임무는 이렇습니다.
라인강 동부 루르 공업지대+a를 타격하기 위해 라인강을 도하하는 연합군 병력들에게 도이칠란트 B집단군이 시선을 끌지 못 하도록 양동작전을 펼치는 동시, 교두보를 장악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병력이 뛰어내리면서-총 21680명- 마켓-가든 작전에서 붉은 악마들을 날려 버린 경험이 있던 연합군 수뇌부는 이들의 작전을 도하하는 부대의 규모에 걸맞지 않게 축소시킵니다.
즉, 도하에 앞선 교두보 확보가 아니라 그저 양동작전으로 축소됩니다.

사실 3월 24일, 연합군의 도하에 앞서 당일 오전 10시에 강 동부에 3개 사단이 통째로 쏟아져 내릴 계획을 세웠지만 연합군의 상징이던 물량이 드디어 달리기 시작...은 아니고 수송기가 모자라서 2개 사단으로 축소됩니다.

사실 이 2개 사단으로 18공수군단, 역전의 용사(?)들인 미 82, 101공수사단을 쓰려고 했으나 이들은 후에 있을지 모르는 베를린 강하작전을 위하여 남겨 두고 영국 6공수사단과 미 17공수사단이 지명됩니다.

그리고 공수부대로 새로 개편된 미 17 공수사단을 시험해 볼 필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작전에 투입된 대략적인 항공기의 수는...
수송기 1600여대, 글라이더 1300여대, 호위 전투기 889대, 보급강하용 폭격기 240대, 지원 전투기 2100여대, 지원 폭격기 821대[...]
아니 수송기 모자랐다며[...]
워낙 압도적인 화력으로 도이칠란트군을 데꿀멍시켜버리는 바람에 처칠과 아이젠하워까지 와서 이 작전을 지켜보았습니다. 오죽 전선이 안전(!)했으면...

드디어 확실히 결정된 이 작전의 형태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본 개요-연합군 도하병력의 루르 공업지대 타격을 위한 양동작전(?)

전개(?)-패튼장군이 라인강을 도하하여 본격적으로 도이칠란트 본토를 타격하기 전, 먼저 루르 공업지대를 방위하는, 한 마디로 라인강을 도하하자마자 마주칠 적 부대인 도이칠란트 B집단군의 시선을 끌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끌 무언가가 바로 작전명 버시티로 투입될 공수부대.


그래서, 여튼간, 하여간, 어찌 되었던 강하는 시작됬습니다.

미 17 공수사단 507공수보병연대가 도이칠란트 베젤(Wessel)시에 강하해 이 주변에 포진해있던 도이칠란트 84보병사단과 접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해당 사단이 그간 엄청난 압박을 당하던 터라 제대로 전투도 하지 못하고 결국 박살나고 길을 내 줍니다. 동 사단 193글라이더보병연대의 강하율이 무려 9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17사단의 작전은 완벽한 편이었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동 사단 513공수보병연대와 영국 6공수사단은 예상보다 극심한 대공포화에 밀려 서둘러 강하를 하는 바람에 영 좋지 않은 곳에 강하를 했으나 마켓-가든때와는 달리 거침없이 해당 목표로 달려가 도이칠란트군을 제압합니다. 아무래도 작전범위가 좁아-이들이 떨어진 곳이 바로 루르 공업지대- 도보로도 기동에 큰 문제가 없었던 탓이지요. 게다가 여기 부대 상태가 영...

이건 뒤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도이칠란트 B집단군이 제압되면서 연합군은 안정적인 도하를 마칩니다.
하지만 연합군 수뇌부는 이렇게 간결한 작전에 이렇게 대규모의 공수작전을 펼칠 이유가 있었냐는 회의론자들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무시당합니다.

회의론자들이 나타난 이유는 작전 첫 날 공수부대에게 잡힌 도이칠란트군 포로가 3천여명이 이를 정도로 압도적인 전투였습니다.

하지만 강하 도중의 피해가...
땅도 디뎌 보기 전에 무려 1735명이 사망하고 6600명이 부상당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B집단군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 패튼 장군이 도하하여 루르 공업지대를 공격, 마지막 남은 도이칠란트의 전투수행능력을 앗아가 같은 해 5월, 도이칠란트의 항복을 불러왔습니다.

 

사실 이 버시티 작전이...피해가 상당히 막심한 편입니다.
당시 루르 공업지대의 방어를 하던 도이칠란트 B집단군은 이제 전투력이라고는 0이던 도이칠란트가 급하게 급조한 소방대입니다.
히틀러 유겐트에 공군 정비병에 노무자에 러시아 포로에 온갖 허섭스레기가 다 동원된 병력인지라.
그리고 이 패배로, B집단군을 지휘하던 도이칠란트군의 소방수 모델 원수는 숲에 들어가 권총자살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연합군은 5일만에 도하를 마쳤고, 버시티 작전도 2일만에 완벽하게 종료됩니다. 이 작전은 훗날에도 떡밥을 던져도 뭥미? 하는 작전이 됩니다.
그래서 자료 수집이 복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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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시티 작전이란게, 국내건 국외건 아는 사람도 얼마 없고...
한마디로 참 안습한 작전이라 쓰는 데 별 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자료 수집은 오래 걸리기보단 쓰기 번거로울 정도로 짤막하고 갑갑(?)한 이유로써;ㅅ;

위의 이유는 이번 5편의 제목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묻혀버린 마지막 무대 ㄷㄷㄷ

이제 이걸로써 미국이 관여된 유럽전선의 작전은 사실상 막을 내립니다.

...랄까, 3편에서 다룬 내용은 미국이 저지른 짓이 아니라 도이칠란트가 저지른 짓이군요.
제 착오였습니다. 원래는 미국이 1944년 06월 06일부터 유럽전선에서 저지른 작전을 다루려고 했습니다만;;;
증말 다룰 내용 없네요;;;
그래서 어차피 더 다룰 작전도 없고 해서 1944년 06월 06일부터 유럽전선에서 미군이 꼽사리 꼈던 모든 작전들을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면 6편부터는 좀 길어지겠는데요.
작전 한두개씩 같이 써 놓을지도 모르겠구요...


작전명 밀덕의 혼

2009년 10월 5일 월요일

경문고등학교의 괴담 두 가지

1. 경문고등학교의 도서실

제가 다니는 학교, 경문고등학교는 작년 도서관을 신축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도서관이 없었습니다.

<구글 어스에서 보면 그 과거 모습이 보입니다.
2006년 01월 28일, 고도 428M>

<신축한 도서실, 원래 학교 건물하고 지독히도 안 어울리는 디자인입니다;ㅅ;
참고로 이 사진은 학교 교재에서 발췌한 사진입니다.>

아니, 그저 당시에는 경문고등학교 도서실의 탈을 쓴 그저 서고실이 있었을 뿐입니다.

서고실에는 아무도 볼 리 없는 교육법령집과 학교 개교 초기 중요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라 학생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먼지가 쌓여 있기 마련입니다.

작년 여기에서 보관하던 교육법령집을 신축한 도서실로 옮겨야 해서 서고실에 들어가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을 잠궈 두는 자물쇠가 녹슬어버린데다 열쇠마저 분실하여서 창문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하여서 그냥 대걸레로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갔습니다.

들어가 보니 영화에서나 볼 법한 먼지와 거미줄이 잔뜩 쳐진 책으로 가득 들어찬 다락방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정규 도서관이 없던 시절, 분명히 도서부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서부는 분명히 서류상으로도, 선생님들도 도서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소속된 부원도 있었으며 매 축제 때에도 도서실에서 행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문고등학교에는 도서실이 없었으며 경문고 학생 중 도서부 소속 학생이 없습니다.

도서부는 학생, 선생님들의 의식 속에서 분명히 존재했으며
서류상으로도 분명히 존재했고, 지도 교사와 소속 학생도 있었으며 축제 행사도 멀쩡히 진행했습니다.
심지어 학교 행사 예산 편성도 멀쩡히 받았습니다.

하지만 학교 동문회 홈페이지에서는 아무도 도서부원이 아니었습니다.
도서부가 존재하냐는 질문에는 분명히 존재했다고, 분명히 축제 중 포스터를 붙여 놓은 광경도 보았고...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라는 모든 근거에도 불구하고 서류상의 도서부원들과 선생님은 존재했으며 또한 그 활동도 멀쩡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새로 도서실이 건축되며 도서부가 재창설되어 지금의 괴담은 사라지는가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번주 토요일, 학교 운동장 조회를 기회로 할 일도 없고 교무실에 선생님들도 없고(;;;) 해서 1,2,3학년 학생들의 모의고사 등급컷을 본 적이 있었는데 모두 1253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일날 모의고사를 못/안 본 학생은 모두 43명.
이들은 고3 35명-직업반, 결석자, 신종플루 확진자 3인 포함-, 고2 5명-결석자, 신종플루 의심환자 포함-, 고1 3명-전원 결석자-입니다.

그러면 전원 1296명입니다.
그런데 실제 학생들의 수는 1284명입니다.

그리고 교장, 교감선생님을 제외한 선생님들의 서류상 수는 72명-기간제 비정규직교사 3명, 원어민교사 5명 포함-입니다.
행정실에서 이면지로 나온 급여 지급 명세서를 살펴 본 결과 분명히 72명입니다.
그런데 실제 선생님들은 모두 71명입니다!

이 항목은 제가 실제로 접한 후, 일련의 조사 과정 결과 전후 사정이 모두 실제임을 확인한 내용입니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을 확인한 결과 이 상황이 단순한 행정 착오,
즉, 그저 서류상으로 인한 실수로 이런 괴담이 유래된 것이다라는 것을 확인하여
지금은 행정 착오에 근거한 괴상(?)한 괴담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저 모의고사 응시자수는 어찌 된 것인가...
좀 더 자세히 확인한 결과 서울시에는 OMR 마킹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고 2가 22명 그 이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 숫자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번 년도에 퇴직한 선생님이 급여 지금 명세서에 멀쩡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흠좀무;ㅅ;

하지만, '도서실 신축 이전의 도서부'에 해당하는 내용은 사실로 검증되었습니다.
학교 기간인력학생(?)인 신호등도 당시 도서부원 기록에는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2. 미술실의 빨간색 잉크

경문고등학교 미술실에는 언제 구입했는지 모를 약 4L 가량의 빨간색 잉크가 있습니다.
엄청 큰 용량이죠...
선생님 말로도 이게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고,
버려도 어느 학생이 계속 들고 와서 그냥 계속 놔 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잉크는 대체 무슨 재료를 사용했는지,
이걸 가져다 펜 촉으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는데
일반적인 검정 잉크보다 훨씬 이물질이 많이 끼었습니다.
게다가 그 산물로 나온 작품도 조금 빳빳해지고 심지어 두껍게 그린 부분은 바싹 마르고 나니 부서지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잉크를 흘리고 그냥 방치하니 칙칙한 갈색이 되었습니다.

갈색 락카보다 좀 더 짙은 색이라 이건 갈색 락카를 액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갈색 락카는 핏빛이 아주 살짝 도는 진한 갈색이고, 말라도 핏빛이 살짝 가시는 물건인데다 이렇게 확연한 변화를 가지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무엇보다, 이 잉크가 덩이지는 현상이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치 붉은 젤리처럼 변했더군요. 게다가 결코 좋지 못한 냄새까지 났습니다.
그리고 이걸 조사하려고 표본을 채취하려고 하니 감쪽같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미술실에는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 온 흔적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걸로 만든 작품까지 모두 사라졌습니다.

대체 이 잉크의 재료는 무엇일까요.

-이 내용은 비정상적인 경로로 유통되던 괴담입니다.
실제 괴담인지, 타 학교에서 유래되던 괴담이 모종의 이유로 흘러든 것인지,
그저 경문고등학교 한 곳에서만 존재하는 괴담인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습니다.
즉, 이건 경문고등학교에서 유래된 괴담인지도 알 수 없다는 이야기죠;;;
다만, 이런 괴담이 있다는 것을 알아 두고 싶어 추가했습니다.

2009년 10월 3일 토요일

004. 1944. 09. 17. Fight for Our Conceit

-003. 1944. 12. 16. His last resistance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3편에서 예고한 바와 같이 이번에는 마켓-가든 작전입니다.
마켓가든 작전이 아니라 마켓-가든 작전입니다. 왜 마켓-가든 작전인지는 잠시 후 설명하겠습니다.

이 마켓-가든 작전이란...
여러모로 영국군 이하 여러 연합국이 너무 자만했던 바, 결국 08%의 성공을 거둔 작전입니다.

-왜 08%냐 하면... 본 작전이 종결되고 연합국 수뇌부가 말하기를, '본 작전은 80%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했는데 80%는 개뿔-ㅅ- -

간단히 비교를 하자면 후일 베트남 전쟁의 예고편을 찍었다고 하면 편하다고 봐야 할 까요.
애시당초 그 쪽은 참 무익한 이념싸움이라 딱히 비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왠지 양상이 비스무리하여 비교를 해 보려고 해도 딱히 비교를 할 기분이 들지를 않는군요.

그때는 60년대고 다루려는 내용은 40년대니까[...]

여하튼, 시작합니다.

연합군의 파리 점령 이후, 유럽 서부전선은 사실상 광란의 진격의 대명사, 패튼 장군과 그의 강력한 라이벌 몽고메리 장군의 빠와로 인하여 거진 도이칠란트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팔레즈 포위망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서부 전선의 도이칠란트군은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를 다시 서부 전선 도이칠란트군 지휘관으로 재사용하는 등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선은 결국 네덜란드까지 물러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연합군의 진격이 멈췄습니다?

그 이유라 함은...

<출처는 여기. 줄줄줄줄 쓰기 귀차나요;ㅅ;>

이전에도 몇 차례를 이야기 한 바 있는 보급 문제입니다.
특히 완전 공업화 된 미국 쇼미더머니의 포스 아닌 포스로 100% 차량화 되다시피 한 연합군에게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나마 좀 남아 있던 북프랑스의 항구들은 철수하는 도이칠란트군이 철저하게 파괴 공작을 벌이는 바람에 당장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유일한 항구는 노르망디 해안[...]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패튼장군 특유의 진격교리, 즉 자신의 기갑부대는 광란의 질주를 벌이지만 중간에 귀찮은 도이칠란트 군의 점령지가 등장하면 후속 보병부대에게 포위섬멸 임무를 하달하고 또다시 광란의 질주[...]

이 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 내의 수송망의 상황도 안습일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가장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던 프랑스의 철도망은 4년 간의 도이칠란트 점령 기간 중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파괴공작을 필두로 하는 교통망 파괴작전+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한 연합군 공군의 후방 차단 작전+철수하는 도이칠란트의 파괴 공작으로 이게 철도였는지 그냥 쇠막대기 두 개 놓고 그 아래에 나무판자 많이 깔아 놓은 것인지 분간이 안 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노르망디 해안의 후방 보급대부터 최전방 부대까지 사실상 모든 보급은 '레드볼 익스프레스'라 불리우는, 흑인 운전병의 특별 보급대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전방 부대-역시 패튼과 몽고메리네. 여기에 꼽사리 낀 미국 브래들리네 부대까지 OTL-가 점점 노르망디 해안에서 멀어지는 바람에 수송대 자체가 소비하는 연료만도 감당할 게 못되어 가서-한 마디로, 배송료가 너무 비싸서- 결국 진격이 멈췄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당시 도이칠란트 군은 꼬리 말고 도망치기 바빠서 반격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만약 히틀러가 꿈을 좀만 더 일찍 꿨더라면 정말 히틀러가 꿈 꾼 대로 될 뻔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싸움도 없고 심심한 연합군 수뇌부에서는 밥그릇 싸움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보급 우선 순위를 놓고 미국과 영국의 지상군 지휘관들 사이에서 갈등과 반목이...
북아프리카에서부터 보인 양군 지휘관들의 경쟁과 알력은 이 시기에 보급 문제를 둘러싸고 폭발 일보 직전까지 치닫았습니다.

한 편, 프랑스에서 도이칠란트군의 급격한 후퇴와 괴멸은 연합군 수뇌부를 들뜨게 했습니다.
심지어 이제 잔존한 도이칠란트군 전력은 자전거만 가진 소년병과 늙은 병사들 뿐이라는 낙관적인 추정까지 나왔습니다.
오죽하면 1944년 12월 25일을 각 병사의 집에서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말 다 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도이칠란트군이 안습해 할 때 몰아붙이면 쉽게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연합군 수뇌부의 전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후방에서 휴식과 재편성 등 재정비 작업만 해온 공수부대 전력-이라기보단 간지폭풍 대량공수대낮에 보고 싶어서?-을  활용하고 싶어하는 지휘관들의 소망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군 버나드 몽고메리 원수가 이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전의 기획자가 지구방위대 미군의 아이젠하워가 아니라 영국군 몽고메리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지금 영국군 상황은 별 공적도 세우지 못 한 참 안습한 부대의 전형으로,
작전명 오버로드 당시 캉 지구에서 무려 2주간 지지부진하다 미군이 도우러 오자 그제서야 점령에 성공한 가슴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있고 제시한 바와 같이 정말 공적 하나 없이 지지부진한 자기 공훈 좀 세우려고영국군 사기를 좀 올려 주고 싶어서 이 작전을 기획했다는 성격이 큽니다.

마켓-가든 작전 계획

바다보다 낮은 네덜란드에는 라인 강이 흐르고 이 라인 강을 비롯한 뫼즈 강, 발 강에는 7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연합군의 계획은 바로 이 7개의 다리에 공수부대 병력을 투입, 다리를 점거한 후,
지상군이 투입되어 네덜란드의 제방을 지나 네덜란드 방어선과 라인 강을 돌파해 바로 도이칠란트 본토로 진입한다는 작전입니다
만약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크리스마스 전까진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거라는 것이 연합군의 계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전은 2개의 작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마켓, MARKET
1 연합공수군은 브라우닝 장군의 지휘를 받아 가든 작전이 개시되기 전까지 다리와 핵심 지역을 장악한다.

미국 101 공수사단 - 아인트호벤
미국 82 공수사단 - 니이메헨
영국 1 공수사단 - 아른헴
자유 폴란드 공수여단 - 약 1천명 가량의 지원부대

가든, GARDEN

영국 2 군의 지상군은 브라이언 호록스 장군의 영국 30군단을 내세워 마켓의 결과로 확보한 진격로를 따라 북쪽으로 진격.

연합군은 이 부대들로 3일 이내로 라인 강을 모두 확보, 돌파해야 하며 이 작전의 성공을 위해 공수부대가 투입될 지역엔 도이칠란트군 기갑부대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왜냐, 공수부대의 대전차장비란
대전차총, 박격포, 바주카포, 대전차수류탄, 지뢰, 소구경의 야포, 육탄 수류탄 돌진[...]과 같은
지국히 한정된 물건밖에 없으니까.

-탱크를 잡는데에는 탱크가 필요하지만 공수부대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작전은 9월 17일, 일요일 대낮에 개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작전 시작!

드디어 1944년 9월 17일 일요일 오전, 병력 3만 5천여 명, 340문의 휴대용 야포 및 화포, 500여 대 가량의 각종 지프 및 소형 차량과 기타 장비, 해서 600여 톤 규모의 물자를 적재한 수송기와 글라이더가 영국 각지의 비행장에서 이륙하는 것으로 영국군 주도의 장대한 삽질크리는 막을 올립니다.

일단 1차로 시작되는 작전인 공수점령작전, 마켓의 규모로는 해안 후방 지대에 강하하는 작전명 오버로드보다 훨씬 규모가 큰 작전입니다. 아무래도 네덜란드 전 역에 걸쳐 강하하는 것이니 말 다 했죠 뭐.

그러나 작전 초기, 수송기의 고장 등으로 일부 기체가 영국, 또는 인근 연합군 비행장으로 복귀했습니다. 게다가 대낮에 강하를 했으니 도이칠란트 대공포대에게 좋ㅋ은ㅋ표ㅋ적ㅋ이 되었으며, 기타 날다가도 지들끼리 부딪혀 요단강 너머로 날아가거나 등등등[...]

여튼간 오후 2시 15분, 벨기에 - 네덜란드 국경선에서 대기 중이던 영국 30군단이 네덜란드로 진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리고 지상군 또한 작전 초부터 도이칠란트군의 대전차포 공격에 발이 묶였습니다.
아무래도 네덜란드의 길이란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8차선도로 같은 것이 아니라 한강변 자전거 4차선도로(...뭐지 이 비유는?) 같은, 그야말로 산 속 오솔길이 대부분이라 맨 앞을 가던 탱크 한 대만 때려 잡아도 바로 길이 막혀 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거 생각 안 하고 근 5만명 가량을 때려 박으니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죠[...]

하여간 먼저 아인트호벤에 미국 101 공수사단이 강하합니다.
역시 미 육군 최초로 최고의 부대기장을 수여받은 부대답게 이들은 다리 하나를 점령하는 데 성공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점령해야 했던 다리 하나를 도이칠란트군이 눈앞에서 요단강 너머로 날려 보내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시피 남아 있는 최고의 낙하산 강하부대인 미국 82 공수사단이 니이메헨에 강하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다리를 점령하기도 전에 도이칠란트군이 선수를 쳐 다리를 장악합니다.
결국 발 강의 다리를 두고 전선이 형성되었습니다.

한 편, 아른헴에 투입된 영국 제1 공수사단의 경우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이들이 강하한 아른헴 주변엔 연합군이 그 존재를 애써 무시하고 있던 도이칠란트 기갑사단이 배치되어 있어서 순식간에 전장의 폭풍에 휩쓸렸습니다.
그러나 이 기갑사단에 방법당했다는 것은 영국이 패배를 감추기 위한 핑계일 뿐이었으며, 실제 기갑사단들은 1개 보병사단만도 못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작전 초반, 이들을 외부와 연결해 줄 통신트럭 두 대가 감쪽같이 증발하면서 이들은 순수히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이 곳에서 살아 가야 할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이 실종된 두 대의 통신차량은 정말로 말이 많습니다.
실종된 원인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가장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1. 글라이더로 강하하다 숲속에 추락해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했고 아직까지 그들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2. 글라이더째로 늪지대에 쳐박았다, 물론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했다.
3. 현지 주민들에게 트럭 부속품까지 소멸당했다
4. 트럭 운용병들이 쓱싹 해 먹고 날랐다

2차대전 중 가장 대표적인 미스테리로 손꼽히는 미스테리입니다.
다른 미스테리는...음...몰라요 저도[...]

하여간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기갑사단은 9 SS기갑사단 호헨슈타우펜과 10 SS기갑사단 프룬츠베르크인데 이 중 9 SS기갑사단은 쓸만한 전력은 모두 프룬츠베르크에 넘겨주고 도이칠란트 본토로 이동하여 재편성 예정이라 주력인 19, 20 SS 기갑척탄병 연대는 합쳐서 2개 중대에 불과했습니다.
또 사단 포병 연대는 야포가 없어서[...] 그냥 보병으로 싸웠고, 기갑 전력도 판터 3대와 4호 구축전차-전차 잡는데 쓰는 전차랄 것도 없는 잡것?-2대가 전부였으며 예하 공병대대, 대공포대대 등도 말이 대대지 실은 한 개 중대급도 안되었습니다.

그나마 조금 사정이 나았던 9 SS 기갑수색대대는 마켓가든 작전 당일 도이칠란트로 향하는 화차에 적재되고 있었고 결국 다 합해봐야 사단 총원은 3천 명 이하로서 기갑사단은커녕 연대 전투단 수준이었습니다.
역시 10 SS 기갑사단도 9 SS 기갑사단의 인력과 장비를 넘겨받았지만 워낙 프랑스에서 포위-퇴각전 중에 큰 피해를 입어 축소된 편제에도 한참 부족했고, 그나마 괜찮은 전력이던 하인케 전투단, KG Heinke은 아헨-후일 결국 연합군이 최초로 진입한 도이칠란트 본토-의 위기가 급하다고 차출된 상태라 재정비가 시급한 보병 사단 수준도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존 프로스트 중령이 지휘하는 제2대대가 아른헴 대교의 입구를 장악하면서 도이칠란트군의 추가 투입을 방해했지만, 도이칠란트군이 주변에서 투입 가능한 모든 전투 병력을 다급히 투입하고 사단 주력은 다리에 접근하지도 못한 채 마구잡이로 싸우는 상황에서 아른헴 다리 입구 장악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습니다.

결국 9월 18일 오후, 작전 예정 시간보다 24시간을 초과한 상태에서 영국 30군단이 아인트호벤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전날 미국 101 공수사단이 장악하지 못하고 폭파당한 다리가 복구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후방에서 가교를 들고 와야 해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여기에 다시 네이메헌까지 진격하는 데 도이칠란트군의 대전차 공격으로 다시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결국 영국 30군단은 예정 시간보다 70시간을 초과해 9월 19일, 니이메헨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다리는 아직까지 도이칠란트군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9월 18일, 아른헴 대교 입구를 방어하고 있던 프로스트 중령의 2대대는 도이칠란트 10 SS 기갑사단의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장갑차를 앞세우며 공격해 오는 도이칠란트군은 사단 예하 기갑수색대대인 그로텍 전투단이었고, 영국군은 피아트 대전차 로켓포를 쏘아대며 대항합니다. 결국 장갑차가 격파되면서 다리를 막아 도이칠란트군은 더 이상의 장갑차량을 다리 건너로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른험 시내에서는 영국 1 공수사단의 주력 부대가 혼전 상황에 빠졌고, 이에 따라 사단과 대대 간의 통신은 거의 두절 상태가 되고 있었습니다.

9월 19일, 아른헴 대교 반대편의 도이칠란트군은 영국군이 더 이상 항복할 것 같지 않자 영국군이 엄폐해 있을 것 같은 민가에 대해 무차별 포격을 퍼붓습니다. 이 포격에 영국군 대대 병력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음으로써 더이상 영국군은 사실상 모든 전투력을 날려먹습니다.
그러나 전날 다리 한가운데에서 파괴된 장갑차로 인해 도이칠란트군은 다리 건너로 병력을 추진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신속히 30군단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영국 1 공수사단은 결국 괴멸되고 말 것입니다!

9월 19일, 네이메헌의 30군단은 다리를 돌파할 방법을 모색하나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미국 82 공수사단이 강을 우회하여 후방에서 끌고 온 보트로 강을 도하, 다시 교량쪽으로 이동해 다리를 점거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9월 20일, 미국 82 공수사단은 보트를 지원받았지만 그 수량이 매우 적었고 예정했던 시간보다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공수부대원들은 이런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강을 건너고자 하여, 오후 3시에 도하를 개시, 도이칠란트군의 탄막으로 인해 많은 장병들이 물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그리고 도하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되어 강 반대편으로 병사들이 상륙에 성공해 다리를 점거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예정 시간을 훨씬 뛰어 넘었기 때문에 작전은 이 시점에서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9월 20일 저녁, 마침내 아른헴 대교에서 프로스트 중령의 2대대가 와해되어 아른헴 대교에서 퇴각하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영국 1 공수사단도 철수를 개시해 9월 21일엔 아른험을 떠나 오스테르베이크로 퇴각합니다.
이 날, 스타니슬라프 소사보브스키 장군의 자유 폴란드 공수여단이 영국 공수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아른헴 지구에 투입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세력은 워낙 미미해 곧장 영국군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게다가 영국군의 세력은 너무 작았기 때문에 공중에서 투하하는 보급품의 대다수가 도이칠란트군 영내로 떨어졌습니다.
한편, 발 강을 도하하는 데 성공한 영국 30군단은 계속되는 도이칠란트군의 방해에 부딪혀 결국 아른헴에서 수십 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제방길에서 진격 한계점에 도달합니다. 전투력이나 그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잇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격이 불가능했습니다.

이것은 단 한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전공에 눈이 먼 수뇌부의 오판을 아무 잘못 없는 병사들이 대신 치루었다

결국 9월 25일, 영국 1 공수사단과 자유 폴란드 여단은 새벽 6시를 기해 모든 진지를 포기하고 라인 강 너머로 퇴각합니다.
각종 중화기를 비롯해 신속한 이동이 불가능한 부상병들이 유기된 채 생존한 병사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간신히 사지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로써 마켓-가든 작전이 종료됩니다.

얼마 뒤, 영국군 사령관 몽고메리가 80% 이상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선전했지만 실제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이 작전을 진행하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전쟁이 1944년 12월 즈음에 임박하여 끝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17,000명의 젊은 목숨들만이 희생되었으며, 더더욱 영국 1 공수사단은 단지 2,163명 만이 간신히 살아서 돌아오는, 사실상 전멸이나 다름 없는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전은 그간 전장의 최전선에서 싸워 오던 연합군 공수부대에게 큰 피해를 안겨 주었습니다.
작전이 개시된 후, 중장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이 보병 부대들은 그저 거점 방어에 남겨졌습니다.
그리고 이 작전이 끝난 후, 유럽전선은 결국 사실상의 소강상태에 이르었고, 히틀러가 꿈을 꾸지 않았다면 이 전쟁이 1946년까지 계속 이어질 빌미를 마련한, 여러모로 참 말이 많은 작전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작전에서 거진 박살난 영국 1공수사단의 이름은 붉은 악마입니다.
그래서 아른헴을 붉은 악마들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그 뉘앙스가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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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전은 이후에도 자만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결정적으로 입증해 주는 상징과도 같은 작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전쟁에서 여러 수뇌부는 이와 같은 우를 계속 범하였고, 사람은 곧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밝혀 준 결과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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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5편으로는...
미국이 2차대전 동안 유럽에서 참여했던 마지막 전투인 작전명 버시티를 다루겠습니다.


작전명 밀덕의 혼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오늘은 경술국치입니다.

오늘은 2009년 08월 29일,

딱히 기념할 바 없어 보이는 오늘이지만, 오늘은 경술국치 99주년입니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경술국치에 대한 설명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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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개항을 하였을 그 무렵...

일제는 한국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청일전쟁을 벌여 이깁니다.
이로써 일제는 한반도에서 유리한 국면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고
1904년 02월, 러일전쟁에 발맞추어 일제의 군대를 한반도에 불법진주합니다.

이 불법진주한 일본군의 힘으로 한일협정서를 체결,
이로써 한국은 일제에게 전략상 빼앗길 만한 것의 상당량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리고 일제는 동년 08월, 일제는 제 1차 한일협약을 강제체결합니다.
그리고 이로써 한국은 재정권과 외교권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1905년 07월, 일제는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동년 08월 제 2차 영일동맹을 체결,
동년 09월에는 러시아와 포츠머스 조약을 맺어
사실상 세계에게서 한국을 집어 삼키는 것에 관련한 국제적 승인을 받는 것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체결합니다.
이로써 한국은 국명만 남은 허수아비 국가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고종은 이의 무효를 선언하고 1907년 06월 헤이그 평화회의에 세 특사를 파견합니다.
그러나 일제는 이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퇴위, 순종을 즉위시킵니다.
그리고 같은 해 07월 24일, 정미칠조약을 체결, 내정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 07월 27일, 광무보안법을 제정, 이로써 한국의 언론은 탄압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 08월, 한국식민지화의 최대 장애요인인 한국군을 강제해산합니다.
그리고 남한대토벌작전을 시행, 항일운동을 강력하게 진압합니다.

그리고 1910년 5월 육군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3대 통감으로 임명, 한국식민지화를 단행하도록 하였습니다.
데라우치는 헌병경찰제를 강화, 일반경찰제를 정비하였는데
일제는 이미 1907년 10월부터 한일 경찰을 일원화하여 전국의 경찰 직무를 장악한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1910년 06월 각서를 교환하여 종래의 사법, 경찰권 이외에 일반경찰권까지 탈취하였고
동년 08월 16일, 비밀리에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합병조약안을 제시, 수락할 것을 독촉하였으며
같은 달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는 한국민의 반항을 두려워하여 당분간 발표를 유보하였습니다.
조약체결을 숨긴 채 정치단체의 집회를 철저히 금지,
원로대신들을 연금한 뒤인 08월 29일, 순종으로 하여금 양국(讓國)의 조칙을 내리도록 하였습니다.
8개조로 된 이 조약은 제1조에서 ‘한국정부에 대한 모든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제에 양여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1910년 08월 29일,
조선왕조가 건국된 지 27대 519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보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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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오늘은 경술국치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기념할 만한 일이 더 있습니다.
딱히 공식적으로 기념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만...

<사진출처는 제 여권입니다. 우왕?>

제 생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제 생일이요.

그저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우왕 ㅋㅋㅋ 하고 덜렁 포스팅 하기는 싫었습니다.

모든 포스트에서 쓸만한 단 한 줄의 정보라도 얻을 수 있는 포스팅을 하는 것

오오 그거슨 진정한 블로거의 사명 오오오[...]

그리하여 이렇게 경술국치와 제 생일 자축포스팅(?)을 하나로 엮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제 생일은 그냥 제 생일이라는,
그냥 오늘은 텍큐닷컴 모 블로거의 생일이라는 것은 아나마나한 정보이기에
이건 얻을 가치도 없는 정보이구요.
 
더군다나 제 생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술국치라는 대사건을 덮는 것 자체가
제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를 않았구요.
그리고...


그래도 그냥 한 주제로, 제가 쓰는 포스트 치고는 짧은 축에 속하는 포스트에다
단 한 주제만 놓고 포스팅하기는 왠지 이런 느낌을 너무 많이 받아서요.

하지만 현실에서도...
방송부 활동에다 선도부장 직무라니.
그야말로 친구들이 우왕 ㅋ 굳 ㅋ 하고 떨어져 나갈 만한 테크입니다.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를 셋만 만들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던데...

그냥 말 걸면 같이 이야기해주고 점심, 저녁급식시간에 밥이나 같이 먹는 애들을 친구라고 하면 친구 숫자는 때로 늘어납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친구입니까 -ㅅ-;;
제 친구관이 잘못된 것인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그저 단순히 말이나 같이 하고 밥이나 같이 먹는 그런 건...진짜 친구라기엔 왠지 아니다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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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포스트 스크립트.
서...선물...!

선물!!!

...짤방 선물도 받습니다. 우왕 ㅠ 굳 ㅠ

그런데...우연이라기는 좀 그렇고 아니라기도 좀 그런 사실이 있는데요,
저는 1910년 08월 29일로부터 829시간 후에 태어났다고 하네요.
1992년 08월 29일 오전 9시경 출생이랬나 어쨌나...

2009년 8월 15일 토요일

이 전투기들은 모두 당대 최강의 전투기들입니다.

<최상단 F-15 스트라이크 이글, 좌상단 F-4 팬텀, 우상단 P-51D 무스탕, 우하단 F-22 랩터>

위 사진에 등장하는 전투기들은 모두 당대 최강의 전투기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배트남전, 걸프전, 지금 현재. 순서 순으로 따지자면 이렇네요.

솔직히 전 전투기의 스펙에는 영 관심 없는 육군-공수부대 특화 밀덕이라 위키에서 대충 적당히 발췌해서 쓰려고 했는데 역시 위키백과는 느려요.

해서 제 기억에만 의존해 쓰겠습니다.

그리고 순서는 물론 개발 시대순입니다.

그리고 왜 이 중에 F-16이 없냐는 질문에는...

그건 그냥 지나가는 양산형 전투기에요.

P-51D 무스탕, P-51D Mustang

이 기체를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자면 최강의 프롭기 논쟁을 불식시키지 않는 당사자.

때는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영국 공군은 자기네 공군이 딸려서 미국한테 뭐 도움이나 얻을까 하는 생각에 구매단을 미국에 파견합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가 보니 쓸만한 비행기는 얼마 없고...
그냥 미국은 닥치고 물량공세라는 것을 실감한 영국 공군 구매단은 그냥 적절하게 P-40이라는 뱅기를 적절하게 지릅니다. 그런데 이 전투기의 원 제작회사인 커티스가 제작기술이 딸리니까 North American사에 가서 이것 좀 같이/대신 생산해 주면 안되겠냐는 개념 0%의 행동을 보여주자 성질이 뻗친인자하신 이 회사의 사장님께서 내게 4개월만 주면 이몸과 이몸의 회사께서 끝내주는 뱅기를 만들어 안겨주마라고 하자, 이에 혹한 영국 공군 구매단은 그냥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럴리가. 영국 공군은 만약 그 기체의 성능이 안습이면 그냥 계약 파기한다, 그렇지만 그 기체의 성능이 좋다면 300대를 지르겠다는 조건 하 계약이 성립됩니다.
그래도 이 사장님이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이 회사에서 신형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관심을 안 줘서[...] 그랬대요. 안습;ㅅ;

그래서 약 117일 후, 사장님께서는 진짜로 Mustang MK. I이라는 새 전투기 320대를 만들어 안겨줍니다. 흠좀무.

그리고 새 뱅기를 지른 영국 공군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테스트를 해 봅니다.
그런데...불과 고도 4000M 이상에만 올라가도 기체성능이 떨어져서...;ㅅ;

P-40에 쓰던 엘리슨 엔진을 그대로 달아 놨으니 이럴 수 밖에 없죠;ㅅ;

그래서 개발국인 미국에서도 그냥 이걸 전투기로 안 쓰고 A-36 아파치라고 이름을 붙이고 급강하폭격기로 이용했습니다? 아...아앍?

그래서...고대로 320대 환불하나 싶었는데...
영국 공군은 환불을 싫어했는가 봅니다.
Mustang MK. I이라는 기체의 기본 스펙이 훌륭하다는 것을 간파, 종전의 영국 공군 항공기들이 이용하던 멀린 61엔진으로 교환.
그러자...
고도에 상관없이 출중한 성능을 발휘한 데다가 최대속도가 80km/h 증가, 700km/h 이상의 속도를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우왕ㅋ 굳ㅋ 을 때린 영국은 물론,
원 제작자인 미국도 이 기체를 마구마구 생산해내기 시작,
결국 Mustang MK. II라는 업그레이드 버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기체는...

<앞에서 날고 있는 기체입니다. 뒤에서 날고 있는 기체는 P-47 선더볼트.
저건 따로 다루지는 않겠으나, 일단 저거 별명이 날아다니는 탱크입니다.
공격력 말고 장갑 말입니다. 날개가 감자 가는 강판[...]이 되어도 멀쩡히 날아다녔다고 하네요[...]>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당시 공공의 적이던 도이칠란트의 전투기중 하나인 Bf-109는...

<Bf-109. 아프리카 군단 버전인가 봅니다. 아무래도 기체도장이 사막색이니까요[...]>

...이렇게 생겼습니다.
보시다시피 생김새가 워낙 비슷합니다[...]
해서 Mustang MK. II기종이...멀쩡히 아군 영역 날아다니다가 팀킬당해서[...] 이게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안 그래도 파일럿들이 이거 타면 뒤가 안 보인다고 막 우왁우왁 해서 그것도 고치고, 내부 무장도 늘리고 연료 탑재량도 늘려서 최종적으로 그냥 킹왕짱이 된 P-51D형을 내놓습니다.
그게 바로...

<기체 도장 한번 화려합니다 ㄷㄷㄷ;;; 이게 미국 공군 전통이라죠.>

P-51D 무스탕입니다.
그리고 본 기체는 약 8000대가량 생산, 제 2차세계대전 중 유래가 없는 기록, 즉 하루에 다섯 대 이상의 도이칠란트 전투기를 격추하던 무수한 에이스들을 낳았고, 파괴한 기체는 약 5000여대, 지상물은 약 4000대에 달합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에도, 개발된지 10년을 내다보는 가운데에도-제트항공기가 2차대전 후반에 실전배치된 점을 감안해 봅시다.-역시 현역으로, 신생 대한민국 공군에도, 미국 공군-미국 공군은 지금껏 미육군 육상항공대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습니다. 미 공군의 창설 역사는 따지고 보면 한국 공군과 같이 한다고 봐도 별 문제가 있을...지도??-에도 훌륭한 전과를 내었습니다.

F-4 팬텀, F-4 Phantom

<대한민국 공군, 387호기(?)>

이 기체를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자면 가장 육감적인 동체를 갖춘 전투기
정말로, 정상인의 시각으로 이야기하자면 무스탕의 뒤를 이어 가장 성공적인 길을 걸은 전투기입니다.
비록 전시와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기체가 아닌지라, 무스탕과 같은 화려한 뒷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 기체는 그만큼 성공적인 기체입니다.

일단 기체 크기가 크지만 날개가 접혀서 항모에서의 적재공간도 적게 차지했고 기체 크기가 큰 만큼 연료 휴대량도 제법 되었고...-좀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날개 내부까지 연료탱크였습니다?-

딱 맞춰서 5,195여대가 생산되어 서방측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전투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태껏 만들어진 서방측 전투기 가운데 가장 많은 실전 참가횟수를 자랑하는 동시에, 가장 많은 손실횟수를 자랑합니다.

그리고 대지공격력이 상당한 터라, 아직도 당당히 현역으로 운용중인 국가가 많습니다.
물론 도입했던 국가 한정으로요.
그리고 F-16이 더 흔하지 않냐는 질문에는...지금 이 기체가 퇴역 추세에 있거든요. 아직까지 이걸 주력전투기로 굴리는 나라는 돈 없는 평범한 국가-ex, 대한민국;ㅅ;-[...]뿐이라 그럴 지도 모릅니다. 안습;ㅅ;

참고로 미군에서는 완전히 퇴역하고 림펙같은 합동훈련에서 표적이나 끌고 다니거나 직접 표적이 되거나 해서 슬슬 이름만을 남겨 두고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왜 이 기체가 당대 최강의 전투기로 꼽혔느냐...
바로 당대 최강의 멀티롤 파이터이기 때문입니다.

멀티롤 파이터, Multirole fighter?
저도 모르고 있던 개념입니다만, 검색해보니 '멀티롤'이라는 단어를 보시다시피...
그냥 멀티플레이어 전투기의 의미가 되겠네요.
참고로 소련은 팬텀에 준하는 멀티롤 파이터를 개발한 연도가...
1968년에 Mig-23의 시제기가 나왔다면 대충 이해가 가실런지...?

이 기체의 시제기가 무려 1954년에 McDonnell Douglas사에 의하여 완성(!)되었다는 것을 감안해 봅시다.
아무래도 시제기인만큼 실전배치된 전투기와는 다르다는 점을 감안, 실전 배치년도가 1960년대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면...

2009 - 1960 = 49

그러니까 대충때려잡아 반세기동안 이게 날아다니고 있네요[...]

그렇지만 당대 최강의 기체라기엔 좀 모자랐던 면이 있습니다.
바로 기관포가 달려있지 않다.

당시 미국은 신개발품인 미사일-이 미사일이란 분께서 2차대전 후반에 등장하셨다는 점을 고려하시면 간단합니다. 제 3제국이 저지른 V2라는 액체로켓을...-이 등장해서 이제 근접전이 ㅃ2를 칠 개념이라고 설래발을 칩니다.

그래서 이런 의식이 팽배해 있던 상황에서 개발된 기체가 팬텀이니만큼 항공기간 근접전에 쓰는 무기인 기관포를 달고 있을 리가.
...해서 첫 실전 무대인 배트남에서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합니다.

물론 당대 최강의 전투기이니만큼, 시야 밖 전투기를 격추할 수 있었던 미사일도 장비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적국 전투기보다 적국 방공시스템에 의해 고생했습니다.

사실 이거에 대하여는 말이 참 많은데 당시 기술로는 전투기 콕핏-전투기 운전석 앞 뾰족한 부리(?)부분-에 레이더와 기관포를 다 같이 넣을 기술이 없어서 이래 되었다는 말도 있구요.
일단 그때 레이더니까 진공관 레이더라서 기관포 쏴서 진동이 생기면 진공관 깨져서 레이더 ㅃ2크리를 먹어 안습테크를 타는...
...해서 내장하지 않다가 60년대 중, 드디어 진공관 없는 레이더가 개발되어서 드디어 기관포를 내장할 수 있게 되어서 이제서야 기관포를 내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관측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 공군이 20MM 기관포를 날개 거치형으로 따로 개발해-원래 비행기의 기관포는 전투기 내장이 기본입니다. 공격형 헬기는 말구요. 그건 헬기잖아요[...]- 비행기에 장착해서 사용하고, 미 해군은 쫀심상한다고 기관포 안단다고 버티는 등 콩가루 집안스러운 행보(?)를 이어가다 결국 미 공군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관포를 내장한 버전인 F-4E버전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미 해군은 이걸 끝까지 타지 않았습니다. -ㅅ-

그리고 이 기체가 이런 사연을 겪고 1980년대, 드디어 노후화를 숨길 수 없게 되자 슬슬 퇴역을 시작합니다.
...해서 위에서 말했듯이 지금은 그렇습니다. 우왕?

여담이지만 팬텀의 생산번호 5000번은 대한민국 공군 인도분 F-4E였습니다.
그래서 기념 마킹까지 화려하게 한 스케일 모델까지 발매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운용하다 날려먹었다네요. 그래서 개발진이 땅을 치며 통곡했다고. 아앍;ㅅ;
그리고 한국군 훈련 과정에서 한국 공군 F-16을 잡았던 적도 있다구요. 역시 양산형-ㅅ-

여러모로 말도 많지만 그만큼 훌륭한 기체이기에 이렇게 당대 최강의 기체에 이름이 들어갔습니다.

F-15 스트라이크 이글, F-15 Strike Eagle

<F-15E, 이것도 같은 스트라이크 이글입니다만, 이게 원래 한국이 들여요려고 했던 기종입니다.
정말 한국이 이걸 들여왔더라면 중고를 들여오는 것이었죠.
하지만 한국 공군이 들여온 기종은 이것보다 더 좋은 F-15K입니다.>

이 기체를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자면 누가 뭐래도 당대 최강의 전투기
이 기체는 FX사업으로 인하여 그 유명세를 톡톡히 누린 기체입니다.
물론 이제 와서 라팔이 쎄냐 이 기체가 쎄냐고 물으신다면...
전 당연히 이 기체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체는 원래 정식 전투기로 개발될 전투기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다목적기(=멀티롤 파이터)를 노리고 개발되던 F-111의 호위기가 될 예정이었으나...

막상 이걸 노리고 개발된 F-4가 멀티롤 파이터에는 훌륭했으나 막상 공중전에서는 기관포가 없어[...] 고전하자, 이전에는 그저 전투기로써 전투기-전투기는 원래 전투기끼리의 싸움을 위해 탄생한 항공기입니다. 그런 만큼 원래 땅을 때리고 바다를 때리고 할 이유가 없었던 기체입니다. 단지 괜히 비행기 여러대 돌릴 필요 없으니까 멀티롤 파이터라는 개념이 나오고...지상의 전차/탱크도 또한 비슷한 과정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그쪽도 여러 개념으로 나뉘어 있다 주력전차, MBT라는 개념으로 통일됩니다.-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설계방침이 급선회.
...해서 원 개발품에는 물론이고 McDonnell Douglas사의 제작팀도 지상에는 단 1%도 할애하지 않겠다를 모토로 하고 문에도 써 붙이고 작업을 했습니다 ;;;

그리고 1974년 실전배치.
이번에는 이 기체의 시제기가 언제 나왔는지 까먹어서 그냥 실전배치 연도만 적어 놓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여담.
대다수 이글까들이 이글을 까는 이유가 바로 이거죠. 이런 고물 전투기를 왜 들여 오냐고.
이건 몰라서 하는 이야기에요. 미군만 해도 최소 2020년까지 이걸 사용하기로 하고 있구요.

그런다고 대당 가격이 무려 1억 5천만달러-2009년 08월 15일 오전 01시 27분 환율 기준으로 185,850,000,000원. 무려 일천 팔백 오십 팔억 오천만, 아앍..........-짜리 랩터로 다 대체할거라고 이런 고물 비행기 말고 신개발품 랩터를 들여오라는 병크를 터트리는 족속들도 있는데 정말 이걸 이글 40대 대신 40대 들여와도 7,434,000,000,000원, 무려 칠조 사천 삼백 사억원[...]입니다. 하지만 이글의 경우는 F-15E 기준으로 대당 68,145,000,000원, 육백 팔십 일억 사천 오백만원, 40대에 2,725,800,000,000원, 이조 칠천 이백 오십 팔억원. 꼴랑 이거밖에 안하잖아요[...]

즉, 이와 관련하여는 그야말로 모르는 자들의 병크.

덧 - 서울시 교육예산은 약 3조원에서 간당간당 합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 공군은 미국에서도 퇴역한 기체-팬텀-를 아직까지 잘만 굴리고 있고요.
이런 이유로써 한국 공군은 고질적인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걸 아마 2080년까지 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여담을 끝내고 있습니다.
이 기체는 일단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대지공격에는 전혀 기능이 없었습니다. 뭐, 전투기니까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 배전반이나 그런 건 준비해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초기형을 인도받은 나라가 바로 일본.

그래서 일본 항공자위대의 주력전력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허구헌날 떨어집니다.
역시 전투기를 가져다 땅을 때리려니까 그렇지 -ㅅ-

...그래도 최소한 우리나라 주력기인 F-4, F-5는 쌈싸먹을 스펙은 가졌습니다.
KF-16은 개량버전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상대를 할 수는 있지만.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 기종이 공중우세기로 분류됩니다. 뭐 설계부터가 그렇게 되었었으니까요.

...그리고 잡설은 줄이고 1982년, 미국에서는 새로운 전투폭격기에 대한 수요가 등장합니다.
해서 이글의 출력이나 설계에 여유가 한참 있었기 때문에 F-15를 2인승화 하고 지상공격이 가능하게 대대적으로 개량한 F-15E형을 새로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1986년 12월에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구요.
그리고 완성된 기체는 최대 11톤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고 4톤의 무장에 대공미사일을 장착하고 외부연료탱크를 장착한 상태에서 1380km를 왕복비행 가능하며 자체 레이더로 지형스캔을 해가며 추적과 지상공격이 가능하고 컨포멀 탱크라는 기체 자체에 추가부착되는 연료탱크를 보유한데다 공중전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1988년부터 실전배치가 되기 시작했으며, 이 기체야말로 진짜로 꿈의 전투기라고[...]

한 때 이런 훈련결과도 있습니다.
이거 한대 잡으려면 전투기 144대가 터져나가야 이거 한 대를 잡는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쓸모가 없어진 F-111은 퇴역당합니다.
F-111을 호위하기 위해 태어난 전투기가 오히려 그걸 몰아낸 격이지요;;;

이렇게 검증된 당대 최강의 전투기, F-15에 대한 개략적인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심심풀이 삼아 쉰 떡밥인 FX사업을 다뤄 볼까요...

...사실 대한민국의 원래 FX사업은 제법 엄청났습니다.

원래 1980년, 일본도 이글의 일본판인 F-15J를 들여오고 북한마저도 MIg-29를 들여오자 이거 이러면 북한 애들, 더 최신형도 들여오겠네 싶어서 이에 대하여 미리 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F-15C/D급의 중형 전투기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KFP 사업이라고, 지나가는 양산형을 도입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이것 땜시 FX사업은 사실상 90년대로 미뤄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1993년, 국방부는 노후된 팬텀을 F-15E급의 전투기로 대체한다는, 즉 120대를 들여온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냉전의 종식으로 이제 수요가 팍 쭐어든 전 세계 군수업체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일단 공군의 요구를 맞춘 회사는 다 참가를 했을 정도니까요.-참여 항공기만 따져도 무려 6대. ㅎㄷㄷ-
그런데 국방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공군 요구의 120대는 너무 많다, 게다가 조기경보기, 차기훈련기, 공중급유기 등 공군주제에 벌이는 사업이 많다[...] 해서 1996년에 20대를 줄여 100대를 지르기로 하고 1998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서 2000년 선정, 2002년부터 도입 시작, 2010년 도입을 끝낸다는 야심찬 가이드라인을 내놓지만...

꼴랑 38억달러를 막지 못해 국가가 파탄납니다.

...그래서 100대에서 40대로 팍 줄이고...안습;ㅅ;

그리고 이 이후로는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던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F-22 랩터, F-22 Raptor

<참 CG스러운 이미지입니다만, 저 기체가 원래 이렇게 생겨먹겄어요[...]
그래서 요새 미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이 기체를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자면 병신이 된 진정한 엘리트[...]
왜 이 기체가 병신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한화 일천 팔백 오십 팔억 오천만원이라는 대당 가격 덕택이죠[...]
-그러니까 토니 스타크 개자식[...]-
게다가 유지비도 한 몫 합니다.
1시간 비행에 4만4천259달러, 한화 54,836,901,000원, 오백 사십 팔억 삼천 육백 구십만 천원입니다[...]
참고로, 한국 공군이 이거 한대만 돌려도 지금 대한민국 전 군이 추진중인 사업을 향후 50년 후로 미루거나 접고 세금은 늘어나고 일본은 자기네한테도 팔으라고 왁왁거리고 한국에 공식적인 채널로 항의하고 중국은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러시아는 폭격기를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둔해두고 북한은 더욱 왁왁거리고 시민단체는 국방부 폐지하라고 하고[...]

이런 엄청난 가격땜시 나오고 있는 기체가 이 기체의 다운그레이드판이자 미국 최후의 유인전투기인 F-35.
이로써 랩터는 인류 최강의 전투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미국도 원래 목표이던 700대(!)에서 200대 수준으로 줄였으나 현재는 179대분의 허가만 나와 있는 상태입니다.

이걸로 미국을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지금까지 확인된 자료에 따르자면
이 우주 내에는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값을 합니다.
몇번 국내 신문에도 나왔던 랩터의 빠와(?)

#1. 미군의 훈련에서 F-15, 16, 18을 도합 144대 격추했으나 F-22는 피해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훈련에서는 도합 220여대의 F-15, 16, 18을 격추하고도 F-22소속 비행대는 단 2대밖에 격추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기의 랩터가 모든 다른 비행기를 격추한 건 아니고, 한 편대(5기)가 참가했습니다.

#2. 2006년 알래스카의 Northern Edge 훈련에서 F-22와 F-15의 블루포스,
F-15, F-16, F-18의 레드포스가 벌인 모의 공중전의 성적은 241대 2.
그런데, 그나마 격추된 블루포스의 두 대는 F-22가 아니라 F-15였습니다.
보통 10% 손실이면 훌륭한 기록으로 취급받는데 더 황당한 건 레드포스는 E-3 조기경보기의 지원을 받았는데도 저 정도[...]

그것보다 더 황당한 건 레드포스는 격추 판정 후에도 리스폰(=부활)을 시켜서 전투에 재참가시켰는데 블루포스는 리스폰따위는 아오안이었다는 사실.
그러나 더욱 충격과 공포인 사실은...
이때 레드포스의 파일럿들의 증언에 의하자면
불과 10피트 눈 앞에서 또렷이 보이는 비행기가 레이더에 탐색조차 되지 않았다.
-한 때 꿈의 전투기인 F-15는 레이더에 잡히기라도 했지...ㅠ-
...이 이야기는 랩터를 미사일로 때려잡는 것이 불가능하단 것입니다.
현대의 전투기 잡는 미사일들이 죄다 레이더로 유도되는 미사일인데...

그런다고 이걸 기관포로 잡자니 엔진 스펙도 랩터가 몇 배는 뛰어납니다.

즉, 인간의 실력, 기술로는 절대로 격추가 불가능하여,
위에서 나온 가정상황이 전혀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
아니, 오히려 저거 도입은 전쟁 도발행위를 의미한다고 전쟁을 걸 수도 있는 스펙.

지금까지 전 세계의 군사전문가들이 이 전투기를 상대하는 방법을 연구해본 결과, 인해전술이라는 답을 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은 외계인을 고문하여 기술을 빼내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흠좀무.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날아다니는 외계인은 미국이 고문하고 땅을 기어다니는 외계인은 도이칠란트가 고문하고 있다[...]

만약 이 기체가 전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한 대씩만 주어진다면 세계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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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우왕;ㅅ;
쓰고 나니 엄청 기네요;ㅅ;
일단 다듬어야 할 것이 눈에 엄청 띄는 바, 일단 이렇게 올려만 둡니다.

...이런 포스트를, 우리는 쓰고나니까 끔찍하네요;ㅅ; 라고 합니다.
실은, 쓴 본인도 놀랐습니다(?)
나 육군 특화 밀덕인데 이거 왜 이래 ㅎㄷㄷ;;;


2009년 7월 13일 월요일

003. 1944. 12. 16. His last resistance

-002. 1944. 08. 15. Mission for Our Future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2편에서 예고한 바와 같이 이번에는 히틀러 산하 제3제국의 공식적 최후 저항인 바스토뉴 숲의 벌지 전투에 대하여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원래 예정대로라면...
저 불그죽죽한 사각형[...] 안에 있는 내용대로 되어야 했지만 전 근성이 없어서요[...]
실은 이쪽에까지 손대면 이 카테고리를 子블로그로 떨궈 내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해져서 어쩔 수 없이 이 항목은 넘어갑니다.
그러면 이상 잡설은 줄이고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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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주 기본적으로 작전명의 유래, 입안자를 살펴 보겠습니다.

벌지 전투(Battle of the Bulge)는 제2차 세계 대전 후반기, 서부전선에서 도이칠란트 제3제국의 최후 대반격에 대해 연합군이 붙인 이름입니다.

여기서 왜 벌지 전투라고 붙였냐 하믄...
도이칠란트군의 진격에 의해 전선의 일부가 돌출된 것을 가리켜 미군이 붙여준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돌출된'이라는 뜻을 가진 것은 벌지(Bulge)라, 벌지 전투가 되었습니다[...]
영화 벌지 대작전 이래로 벌지전투란 명칭이 사실상 일반화되었습니다.
도이칠란트군은 작전명 라인을 수호하라, Unternehmen 'Wacht am Rhein' 이하에서 대공세를 펼쳤습니다. 대반격은 서부전역사령부-Oberbefehlshaber West-사령관이었던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원수에 의해 입안된 것으로 룬트슈테트 공세-Rundstedt-Offensive-혹은 지명에서 유래된 아르덴 공세-Ardennenoffensive-로 불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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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4일, 영국군은 벨기에의 앤트워프를 해방하였지만, 보급거점으로써 사용하기 위해서는 근방의 도이칠란트군을 몰아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걸 어디다 써 먹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리도 한심한 생각 덕분에, 즉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써 먹지 않겠다는 영국 덕분에 보급선이 길어져 연합군의 진격은 정지되고 전선은 교착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9월 17일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이 계획한 마켓-가든 작전이 개시되어 도이칠란트 본국에 대한 침공이 시도되었으나 현지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오로지 전공만을 위한 작전이었기에 몽고메리가 말하길 80%의 성공이었다지만 실은 08%의 성공이었다구요-ㅅ-
해서 전선은 다시 교착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작전이 이 모냥이 나서 연합군은 제법 큰 피해를 입었던 터라 일시적으로 진격을 중지하고 엄청난 문제가 된 보급대책의 해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 동부전선, 폴란드 동부에서는 소련에 의한 작전명 바그라티온이 끝나가던 시기였기에 소소한 쉬는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던, 이미 코너에 몰릴 대로 몰린 히틀러는 자신이 가진 마지막 패를 던지는 대반격작전을 구상했습니다. 말하자면 1940년 개전 초기, 프랑스에 대한 전격전 승리를 리인엑트-재현. ㄷㄷㄷ-하는 것으로 벨기에 아르덴 지방의 삼림지대를 기갑부대로 돌파하여 단번에 앤트워프까지 진격하여 탈환, 서부전선 북쪽의 연합군을 포위, 괴멸시킨다는 작전안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도이칠란트의 군사력으로 봐도 꿈에서나 꿀 정도의 반격작전인지라 수뇌부의 룬트슈테트, 발터 모델은 당연하게도 반대했으나 히틀러는 그 꿈을 사실로 믿고서 이 작전의 성공으로 서부전선이 정체된다면, 이로써 연합군이 쫄아서 자기네하고 강화한다면 동부전선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은근히 불쌍합니다. 이거 뭐-ㅅ-

그리고 또 다른 작전안으로써 북부에 광대한 전선에 분산된 코트니 H. 하지스 장군 휘하의 미국 제1군을 협공하여 괴멸시킬 것을 제안했습니다. 아무래도 아무리 1개 군 병력-1개 군 병력이 최고 8만명 수준.-이라도 광대하게 분산된다면 적군의 분산포위, 각개격파가 쉽고 아군의 피해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만...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32만 6천명을 상륙시키고 그 후에도 속속 병력이 증원된 방대한 병력을 가지고 있던 연합군 전력의 소수를 줄이는 것 말고는 성과가 없어 이건 아무래도 전세를 역전시킬 방법이 아니었기에 그냥 버렸습니다.

...해서 작전시기는 아르덴 숲이 안개에 휩싸이는 겨울로 잡았습니다.
이미 제공권은 연합군으로 옮겨졌기에 항공기에 의한 격렬한 폭격으로부터 부대를 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도이칠란트군은 그토록 극심한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무려 20여개 사단을 준비하고 신예전차인 티거 2도 포함시켰으나...뚜껑을 열어 보면 동부전선에서의 출혈의 영향 때문에 거의 모든 부대가 정원을 채우지 못하였고 훈련도가 낮은데다 이 20개 사단 중에 민방위사단(?)만도 못한 새로 편성된 국민척탄병사단까지 투입시킬 정도였습니다.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인지라 군수품과 연료의 부족도 심각할 정도로 증가하여 만족할 만한 양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허나, 작전에만은 1944년 전쟁 중 최대치에 도달한 도이칠란트 병기 생산량의 대부분이 투입된 병력으로 작전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공격을 예정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작전중 연합군의 보급 거점을 탈취할 필요가 있는 등...
처음부터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던 작전이엇습니다.
만약 한 가지라도 잘못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작전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았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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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연합군 수뇌부에서는 도이칠란트군 집결정보나 공세작전의 징후를 보고받았으나 도이칠란트에게는 공세에 나설 여력은 남아있지 않다고 판단, 다시 한번 작전명 마켓-가든에서의 우를 범하고 맙니다. 오죽하면 아르덴지방은 깊은 삼림과 산악지대였기에 기갑부대가 쉽사리 통과할 수 없다고 판단, 이 지역의 방위에는 이제껏 전투의 선봉부대로써 이미 전투력을 거의 상실한 병력을 배치, 여기서 재편성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생각은 엄청난 출혈를 맛보게 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연합군 수뇌부는 도이칠란트군이 1940년에 같은 지역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 사이를 뚫고 기갑사단으로 프랑스에 쳐들어갔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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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디 도이칠란트는 9월 중순에 아르덴 숲을 통과하여 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주력은 서쪽으로 진격하여 뮤즈강까지 도달한 뒤 북서쪽의 앤트워프와 브뤼셀로 진격할 예정이었습니다. 가장 곤란한 것은 작전개시로부터의 신속한 이동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뮤즈강을 넘는다면 극적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해안까지 도달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작전은 연합군 첩보본부에 라인란트의 방어작전과 오인시키기 위해 '라인을 수호하라, Wacht am Rhein'라고 이름붙여졌습니다. 이것은 도이칠란트의 노래에서 따온 명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격의 성공에는 3가지 요점이 요구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1. 공격은 완벽한 기습이어야 한다.
2. 악천후여야 한다.-연합군의 제공권을 무효화, 보급로를 확보.-그래서 시기는 겨울 중에도 혹설기로.
3. 신속한 진격이어야 한다는점. 모델 원수는 뮤즈 강까지 4일만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44년 12월 16일, 도이칠란트군은 벨기에 아르덴숲을 통과해 진격을 개시했습니다.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였던지라, 게다가 숲인지라 안개와 같은 악천후의 힘으로 인해 연합군은 항공기를 띄울 수 없어 도이칠란트군은 상당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여하간 기습으로 허를 찔린 미들턴 장군의 미국 제 8군-현재 한국에 주둔하는 미 8군과는 연관이 있을지도...?-은 클레르보, 호지겐 등 일부거점에서 완강하게 저항했으나 여단, 연대, 대대등 고급 지휘관의 전사 및 부상-각각 준장, 대령, 중령 혹은 소령-이 속출하여 지휘체계가 괴멸되어 부대가 와해된다거나 지휘관의 부재로 작전통제가 되지 않아 포위되거나 하는 위급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충격과 혼란을 틈타 벌어진 도이칠란트군의 쾌진격은 작전 개시 후 수일 동안만 계속되었을 뿐이었지 막상 12월 하순에 이르자 도이칠란트군의 주력부대는 여러 지역에서 급히 증파된 연합군-주축은 미군.-에 의한 강력한 저항을 만나 전진은 이제 정체됩니다. 그리고 개별 전선의 진격속도도 큰 편차가 생겨 속공에 성공한 부대가 역관광당하는 사태가 속출했습니다.

처음에 히틀러는 연합군이 이 사태에 대응하는 데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도이칠란트군의 대규모 공세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 수일, 아이젠하워가 각국 수상과 상담하여 부대의 배치전환을 명령하는 데 수일, 그리고 배치전환 명령을 받은 부대가 현지에 도달하는 데 수일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보았습니다.
이 정도로 시간이 걸린다면야...작전은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이젠하워는 히틀러의 수하들과는 달리 상당한 부대 배치에 대한 재량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로써 대규모 공세라는걸 파악하는데, 부대 배치에만 시간이 걸려 사실상 히틀러의 생각은 초장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써 당시 프랑스에서 재건 중이던 101 공수사단을 바스토뉴로, 82 공수사단을 생비트로 급히 증파했습니다. 이것으로써 도이칠란트의 반격작전은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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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2월 23일, 날씨가 회복되면서 연합군은 공중폭격과 공중보급을 개시했습니다. 항공폭격은 도이칠란트군의 보급기지를 안드로메다 워프게이트에 태워 보냈고 전투기들은 도로상의 도이칠란트군을 공격했습니다. 거기에 포위된 바스토뉴에 대해 공중보급으로 의약품, 식료, 모포, 탄약이 보급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자원한 외과의사팀이 글라이더로 현지에 투입되어 부상자 구호작전을 실시했습니다.

한편 12월 24일, 보급선이 늘어지다 못해 끊어진 도이칠란트군의 진격은 뮤즈강 근처에서 정지했습니다. 아무래도 연료와 탄약의 고갈이...또한 작전이 개시된 뒤 도이칠란트군은 무선봉쇄를 해제, 연합군 정보부는 손쉽게 도이칠란트군의 위치를 알아내어 시기, 상황 적절한 반격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도이칠란트군의 손실은 제법 경미한 상황이었습니다.
해서 24일 밤 한스 폰 만토이펠은 작전의 중지와 철수를 요청했으나 히틀러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패튼의 제 3군은 바스토뉴와 바스토뉴에 포위된 부대를 구원하기 위해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12월 26일 16:50분, 제 3군예하 4기갑사단의 일부가 바스토뉴에 도달하여 포위망을 깼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어느새 지나 1월 13일, 도이칠란트군은 바스토뉴에서 퇴각했습니다.
종래에는 1월 23일, 도이칠란트군 사령부에 의해 작전중지가 결정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전투는 공식적으로 1945년 1월 27일날 종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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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작전이 끝나고...히틀러의 바램과는 달리 그저 겨울날의 백일몽으로 끝났습니다.
이 작전 덕분에 도이칠란트에 그나마 남아 있던 도이칠란트의 전투부대, 보급망은 사실상 소멸되어 연합군의 진격을 더욱 더 앞당겼고, 이 덕분에 동부전선에 병력을 투입할 여력조차 없어...
히틀러의 소망과는 달리 결국 전쟁을 더욱 더 빨리 앞당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역시, 꿈은 혼자 꿔야 제맛입니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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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4부로는...
노르망디니 어디니 하여간, 그런 지역에서의 세부 작전을 다루려고 했습니다만 위에서 다룬 이유로써 그냥 접습니다;ㅅ;
해서 4부로는 08%의 성공을 거둔 작전명 마켓가든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작전명 밀덕의 혼

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이 세상 사물들은 모두 그 나름의 맛이 있습니다.

10. 다이너마이트에서는 단 맛이 난다...!?!?!?

다이너마이트의 주 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은...정식명칭은 삼질산글리세롤입니다. 기호는 NG. 아무도 관심 없으시겠지만 분자식은 C3H6(NO3)3입니다. 그리고 글리세린이 들어 있는 이유로써 달콤한 맛

-이 단 맛은 치약의 단 맛입니다 ㄷㄷㄷ-

이 나는 무색투명한 유상 액체입니다.
그리고 이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로 굳힌 것이 바로...

<사진출처 Doosan EnCyber>

...다이너마이트입니다.

이 다이너마이트에 관하여 짤막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 곳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태평양 과달카날 섬.
어느 날 극심한 기아선상을 해메던 일본군이 가방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방 안에는...
종이로 싸인 길쭉하고 제법 묵직한 무언가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물체가 뭔지를 모르는 일본군 병사, 한번 살짝 까서 혀에 대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단 맛이 나더래요...!!
해서 먹어 치웠답니다.
먹는 도중 왠지 돌 맛이 났는데 일단 배가 고프니까 그냥 닥치고 먹었답니다.

그런데 먹을때는 닥치고 먹어서 몰랐는데 다 먹고 보니까 목이 마치 불에 타는 느낌이 오더래요.
그래서 나중에 보니까 그때 자기가 먹었던 것이 다이너마이트였다네요.

여담이지만, 한국에서 이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하는 곳이 두 군데 있는데,
한 곳은 아오안이니 논외이지만 다른 한 곳은...

(주)한국화약입니다[...]

11. 바이올린에서는 쓴 맛이 난다...!!

연주하는 바이올린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이올린이라는 이름의 악기요.
여기서 쓴 맛이 납니다.

<사진출처 Doosan EnCyber>

그러니까 연주할때 나는 소음을 듣고서 좌절할 때 느끼는 쓴 맛이 아니라
바이올린 표면에서 실제로 쓴 맛이 납니다.

바이올린은 제작 과정에서 겉에 칠하는 도료만 최소 10회 이상을 칠합니다.
그리고 이 도료는 바니쉬라고 불리우는 천연 도료라고 하는데
이 도료를 어떻게, 뭘로 칠하느냐에 따라 악기의 소리와 수명이 천차만별이라고 합니다.
그런 만큼 이 쓴 맛[...]은 매우 쓰거나 떫은 맛이 아닌 제법 군침도는(?) 쓴 맛입니다.

물론 도료를 바르기 전 액체 도료의 맛이 아닌
바이올린 표면에 발라져 말라 있는 도료의 맛입니다.

하지만 이 맛도 어느 바이올린이나 다 쓴 맛이 나는 것은 아니고 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바이올린에서는 쓴 맛이 난다고 생각하면 그건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사실 바이올린 처음 보고는 겉 면에 옻을 칠하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옻을 칠하면 옻이 오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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