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9일 수요일

'공수부대'라는 부대의 이야기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냥 '특전사' 같은 부대를 소개하는 포스팅이 하고 싶어져서[그냥 아무 이유 없이]포스팅합니다.

 

공수부대의 기본 개념

 

'공수부대'[이하 에어본]의 사전적(?)의미란,

'3.000피트 상공에서 약 100Kg상당의 장구류를 매달고 낙하산타고 떨어지는 육군부대'입니다.

 

그리고 비슷하지만 다른 용어'특수부대' 입니다.

이 둘은 사람들이 같은 것이 아니냐는 착오를 굉장히 자주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분명히 다릅니다. 사람들이 이 점에서는 자주 틀립니다.

 

'특수부대'는 낙하산,수중으로도 적진에 투입되어서-어떤 형식으로든지 적진에 투입되어야 했으니 낙하산 강하도 당연히 합니다. 이 점에서 대다수 오해를 부릅니다.-작전을 성공하던 실패하던 작전 종료후 본진으로 도망치는 제네바 협정이 적용 안 되는-한마디로 포로 대접도 못 받는-비정규전 부대입니다. 정규전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누가 대놓고 특수 공작 요원들을 적진에 침투시킬까요...

 

'에어본'은 적진에 낙하산으로 강하[강하-降내릴 강,下아래 하] 또는 도보나 트럭으로 전적에 '기습적'투입하여 보병대의 진격로를 뚫어주는 최1선 전투부대입니다.

에어본 투입 형태의 특진상 이 에어본이 적군들에게 고립되어 방법당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러니만큼 대다수 에어본에 관련한 인식은......

'적에게 포위당하는게 일'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하였듯이 '2차로 진격하는 보병의 길을 뚫어준다'는 것은,

'정규전 투입 부대'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니깐 '아주아주 간략히' 에어본과 특수부대의 차이를 설명해 보면...

'에어본은 적진 강하 후 눌러앉는 정규전 육군 보병부대'

'특수부대는 적진 투입후 작전 성공, 실패 여부에 관계없이 작전 수행 후 도망치는 비정규전 부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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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에어본은 적진 강하 후 눌러앉는 정규전 육군 보병부대'

이게 바로 '에어본의 기본개념'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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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본의 유래

 

미 공군의 아버지 빌리 미첼이 고안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신개발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역사의 시작은 안습이었습니다.

1918년 9월의 연합군 대공세 때 도이칠란트군의 요충지 메츠에 1보병사단을 낙하산으로 투하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이는 상부의 반대와 같은 해 11월의 종전으로 무산되었지만 미첼은 그 뒤로도 이 전술을 연구했고 논문으로 공수작전의 유효성을 설파했습니다.

이때야 항공기술이 열악했던 시기에다 인적자원도 변변찮던 시기라, 새로운 전략을 시도해 볼 만한 여력이 없어서 이러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1927년, 파시스트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전투병력의 공수 강하 '시험'되었습니다. 그러나 정규 에어본 편성에 이르지 못한 시험에 그쳤습니다.......

여하간 이탈리아...

 

진정한 첫 시작은 특이하고 새로운 것에 매진하던 혁명 직후의 소련입니다.

'Treasure Of Red army'로 불리던 전략이론가 투하체프스키는 도이칠란트에서 배운 기동전 개념을 자신의 종심전투이론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적 후방지역 공격을 파르티잔-빨치산-과 연계함으로서 붉은 군대에 의한 세계 공산화 달성의 전위당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라는 구호와 함께 에어본의 창설에 힘을 기울였습니다...제법 무시무시하네요.


1931년, 사상 최초로 경전차와 76mm포를 포함한 중대규모 병력을 수송기와 글라이더로 낙하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리하여, 이에 고무된 소련군은 33년에는 사단규모, 35년에는 군단규모로 공수부대를 확대시킵니다. 특히 35년, 유명한 '키예프 대연습' 당시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군 장교들 앞에서 여단 규모의 공수작전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인지 그때까지도 1차대전식 소모전 외는 아웃 오브 안중이던 대부분 서방 군 장교들은 그저 깜짝 쇼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했으며 단지 이탈리아와 도이칠란트군 장교들이 '그럴싸 한데' 정도의 반응을 보인걸로...끝났습니다.

아니, 끝나는 듯 했습니다.

 

실력도 없으면서[ㄲㄲㄲㄲ] 화려한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하던 무솔리니가 서방 최초로 이탈리아에서 정규 에어본을 창설했고 철도모형 덕후에다 군 역사상 최고/최악의 욕심쟁이 괴링에 의해 도이칠란트에서도 에어본이 창설됩니다.

-사실 이 부분에는 말이 많습니다. 원래 다른 장성이 창설한 육군 소속이었던 에어본의 전과를 탐내서 공군 소속으로 옮겼다나...-

결국 사상 최초로 대규모 실전투입을 성공한 것도 도이칠란트였습니다.

-이 작전이 저 유명한 크레타 공방전으로, 도이칠란트 최초이자 최후의 공수작전이 됩니다. 좀 있다 다룹니다.-

 

사족이지만 한편, 정작 소련에서는 '인간백정'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시작된 '예조프시나(대숙청)' 으로 인해 그나마 신식 전술에 눈을 떠 가던 군 장교들이 증발하며 대규모 전력공백사태가 발생, 결국 붉은 군대가 농촌 출신 징집병으로 채워지고 이러한 연유로 에어본도 박살나 버렸습니다.

 

...이게 에어본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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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실전 투입과 그 결과

 

2차대전 당시 도이칠란트군이 그리스 '크레타 섬'에 공수부대를 강하시켰습니다.

이게 '세계 최초 '에어본'의 실제 전투작전 투입'입니다.

이 작전이 저 유명한 크레타 공방전 되겠습니다.

 

사족이지만 여기에 투입된 도이칠란트 에어본의 이름은 Fallschirmjäger, 펠쉬름예거[폴슘야거,팔쉬름야거,팔쉬름예거...다양합니다.]입니다. 펠쉬름-낙하산/예거-사냥꾼. 즉 낙하산 사냥꾼[강하엽병]이 되겠네요. 별칭이 푸른 악마였던고로, 이하 푸른 악마라고 부르겠습니다.

 

일단 이야기는 1941년, 그리스 본토에서 이탈리아+도이칠란트 기갑부대에게 패퇴해 크레타로 쫒겨간 영국군으로부터 이야기가 출발됩니다.

비록 패퇴한 부대라도 연합군의 일원인 영국군이 크레타를 잡고 있는 고로, 도이칠란트군은 절대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할 수 없었죠.

 

전투차량, 중화기 등 여러가지를 죄다 버리고 왔지만 그래도 무려 2만에 달하는 숫자가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크레타같은 작은 섬에 공군을 이용해 폭격을 하자니 크레타 양민의 피해가 불보듯 뻔했고,-양민의 피해라기보단 세계에게 무슨 욕을 들을지 불보듯 뻔했습니다.-

상륙을 하자니 어선을 동원해야 할 정도로 해군력이 변변찮았고,

그렇다고 그냥 놔 두자니 안 그래도 보급때문에 고생하는 북아프리카의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의 아프리카군단 보급 문제부터 남부 이탈리아, 남부 프랑스 등 그 근방의 안보 문제,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크레타를 거점으로 연합군이 상륙을 개시할 때[북아프리카-크레타-그리스 루트]그리스를 거점으로 상륙을 하면, 도이칠란트 보급망 일부가 발칸 반도 근방에 위치하고 있었던지라 바로 피해를 볼 공산이 컸습니다.

 

그래서, 결국 크레타를 점령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해군력이 참혹핬던 터라, 새로운 개념인 에어본을 실전에 투입해 보기로 했습니다.

..랄까, 괴링이 지 전공 쌓고 싶어서 나댄게 더 큰 이유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푸른 악마들이 크레타에 강하하게 되었습니다.

일부는 수송기를 타고 크레타 활주로에 안착, 일부는 낙하산으로 강하.

당시 대공포 한 자루조차 가지고 있지 않을 정도로 비참한 전력의 2만 대영제국군에게

이게 만약 기습공격이라면,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었겠지만 연합군의 암호해독술은 도이칠란트군의 암호제작술보다 훨씬 뛰어났던 이유로 크레타의 영국군에게 푸른 악마들의 투입 예정지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등의 기회를 줬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힘이 없으면 많은 정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걸,

조금 있다 크레타의 2만명 영국군들이 절실히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강습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의 시점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백괴스러운 방식으로 푸른 악마들을 낙하시킵니다.

 

무기따로 사람따로 낙하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낙하산은 초창기 낙하산이라 자세조정이 불가능하여

-어께가 아닌 등에서 방사형으로 낙하산과의 연결선이 뻗어나가는 형태였습니다. 1944년 6월의, 어께에서 크게 4가닥, 다시 거기서 각각 연결선이 뻗어나가는 미군 낙하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뒤떨어진 낙하산이었죠.-

불타는 건물에 떨어진다거나 나무에 걸렸는데 팔이 안 닿아[....] 끊고 내려오지 못해서 포로가 되었다던가 바다에 빠졌[...]다거나...

거기다 직접 가지고 떨어지는 무기는 나이프 한 자루였던 덕분에....

 

크레타 양민들에게 '학살'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이러저러 악조건 속에서도 푸른 악마들은 열심히 싸웠고, 그 결과 2만 영국군들은 참담하게 뭉그러집니다.

-아마 그들은 그리스에 중화기를 놓고 왔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을 겁니다 ㅠ-

하지만 실패라고 해도 적절한 수준의 피해를 입은 푸른 악마는 그 후 부대 재건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렷고, 이를 본 히틀러는 대량 강하를 금지시킵니다.

 

대량 강하란?
몇개 연대/사단/군단 병력을 낙하산 태워 땅에 내려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낙하산부대'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하늘을 가득 채운 낙하산들의 향연'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건 '에어본의 꽃이자 백미'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걸 금지시키다니,
부대가 제 역할도 하지 못하게-시쳇말로 '고X를 만들다'라고 합니다.....-만든 가장 대표적인 이 일, 즉 '히틀러의 치명적 오판'중 하나에 속한다.
그리하여 도이칠란트의 대표적인 정예 전투병력중 하나였던 푸른 악마는 자신의 능력을 채 발휘하지도 못한 채 단순한 '공군 육상전투대'로 변환, 노르망디 해안 방위병력으로 차출됐다가 1944년 6월, 낙하산 타고 내려온 미 101공수, 82공수, 영국군 1공수사단에게 제대로 박살나고, 1944년 말 바스토뉴 숲에서 다시 한번 미 101공수, 82공수사단에게 제대로 깨지고 이후, 그 존재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현재는 도이칠란트 연방군 공군 폭격유도병으로 그 의미가 한참 퇴색되고...아놔. 이게 대체 뭥미?...여하튼 적절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하여튼 이 푸른 악마에게 충격을 받은 히틀러는 공수를 금지시키고-절망-영국은 SAS와 코만도를 만들고 미국은 레인저와 저 유명한 101공수사단, 82공수사단 등을 만듭니다.-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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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번외

 

그러면 이제부터 제 전문분야이자 좋아하는 미군 에어본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코만도, SAS 등도 다뤄야 하지만 이 블로그는 제 블로그이므로[...] 부득이[...] 미군만 다룹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어디까지나 번외이므로 딱히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2차대전 당시 미군 에어본은 17공수사단, 82공수사단, 101공수사단으로 나뉘어집니다. 순서상으로 따지자면 82-101-17이 되겠네요. 하지만 17공수사단은 사실상의 예비대로, 1945년 3월에 있던 작전명 버시티 말고는 별 족적을 남긴 게 없어 작전명 버시티가 뭐고, 여기서 17공수가 뭔 짓을 했는지 뒤에서 간단히 다루겠습니다.

 

아니, 그냥 어디까지나 번외이므로 다들 간략히만 다루겠습니다.

18 공수군단

 

뜬금없이 등장한 군단...은 아니고요,

101사단과 82사단이 속해 있던 군단입니다. 이하 아오안.

82공수사단


82공수사단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으로 유명세를 탄 101공수사단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미군 원조 공수부대입니다.

1942년 이탈리아 시실리에서도 싸웠습니다.


원래는 81 보병사단이였으나 1941년을 직후로 82공수사단으로 임무변경,재창설되었습니다.
그냥 82공수가 이탈리아에서 싸우고 있을 때 101공수가 창설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현재는 미국에서 유일한 '낙하산 강하'부대이자 전 세계 어디든 48시간 이내 강하가 가능한 세계 최고 공수사단이라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의 군용 수송기를 다 합친 것 보다 많은 수송기를 가지고 있다고...물론 검증이 안 된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말입니다.[전 믿고 싶지도 않고 믿을 생각도 없습니다.]


1941년 창설

1942년 이탈리아 시실리 투입
1944년 6월 '작전명 오버로드'당시 101공수와 함께 노르망디 '코탕텡'반도 강하.
1944년 9월 '작전명 마켓-가든'당시 '마켓'작전서 네덜란드 '우덴'에 강하.
1944년 12월 바스토뉴 숲[벌지]에 18공수 소속으로 투입

101공수사단.


101공수사단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대입니다.

-그냥, 제 군장 재현 분야가 이 부대입니다ㅋㅋ;; 아니 뭐 그냥 그렇다구요. -
현재 101공수는 낙하산 강하개념인 '에어본'에서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헬리콥터 투입개념인 '핼리본'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부대입니다.

사족이지만, 현재 주한미군 소속의, 한개 대대를 뺀다 만다 하는 아파치 2개 대대가 바로 101공수사단 소속이고, 이 101공수가 소유한 헬기전력이 한국군 전 군의 그것을 가볍게 능가합니다[....]

 

1942년 8월 창설

1944년 6월 82공수와 함께 '코탕텡'강하.
1944년 9월 마켓작전에서 '아인트호벤' 강하.
1944년 12월 18공수 소속으로 바스토뉴 숲[벌지]에 투입.

-2차대전 중 미 육군 최초, 유일하게 미 육군 최고最高 사단 기장 수여.-

1991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전


...2차대전 당시에는 역시 '에어본'개념으로 유럽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미군 공수사단이 다 그렇듯이 101 공수사단은 원래 보병사단이었습니다.
-101보병사단 창설 연도-1918년 7월 23일.-
그 당시는 1차대전시라 전시를 대비키 위한 '임시편성 부대'라 1차대전 종전 후 바로 해체되었으나 1921년 지역방위개념을 대두로 재창설되었습니다. 사단 사령부는 밀워키.


그리고 재창설 당시 이 부대는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부대'라 한마디로 '예비군부대'입니다.전쟁나면 바로 예비군 소집하는 부대, 즉 현 미군 주방위군-한국군에 비교하자면 동원사단-의 형태이입니다.

하지만 이 예비군부대에도 드디어 햇빛이 들었으니,
1940년 포트 베닝에서 미육군이 최초로 낙하산병 자격시험을 쳤고,

이게 성공하자 이에 고무된 미 당국은 대규모 공수로 적진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부대를 창설하는데에 대해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이때 유럽에서는 푸른 악마에 자극받아 창설된 코만도, SAS가 맹활약중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보병사단의 공수사단으로의 창설 연도는?
1942년 8월 루이지아나의 Claiborne캠프에서 재창설되었습니다.

여기부터는 진짜 사족인데 그리고 이 당시 101보병사단의 공수사단으로의 창설하는데의 주축은 '502공수보병연대'가 주축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377,321 공수보병연대, 907 포병연대와 327.401 글라이더 연대도 합류.
밴드오브브라더스로 유명한 506연대는 1943년에 합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101공수는 참 재미있는게, 분명 '에어본'인데 글라이더[무동력 항공기]로 강하하는 327,401 글라이더 연대가 한개로 엮어져 있습니다.

-애시당초 포병대는 그게 어떤 종류의 사단이건, 하나씩 다 있습니다. 이건 현행 한국군도 마찬가지.-


글라이더연대는 '지프,야포,낙하산으로 투입되는게 두려운 공수부대원들'을 투입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연대는 점프슈트를 입어야 했지만 글라이더 연대 병사들은 일반 보병이 입는 필드자켓을 입었습니다.


이게 '공수 기장'소유한 공수부대원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센 지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공수 기장'은 '공수 시험'을 통과한 공수부대원들에게만 주어집니다. 앞에서 나온 최초의 낙하산병 자격 시험이 이겁니다. 낙하산 타는데 무슨 자격증이 필요하냐 물으시면...사실 낙하산은 초속 2M 정도로 떨어뜨리는데 이거 타고 떨어지다 다치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사족이지만 현행 한국군 장교들에겐, 이게 고급 장교가 되기 위한, 일종의 필수요소 되겠습니다.-

 

작전명 버시티

 

개요-루르 공업지대 타격을 위한 양동작전(?)

전개-패튼장군이 라인강을 도하하여 본격적으로 도이칠란트 본토를 타격하기 전, 먼저 루르 공업지대를 방위하는 도이칠란트 B집단군의 시선을 끌, 무언가가 필요했다.

원래는 18공수군단 병력을 차출하여 사용하려고 했지만 후에 있을지 모르는 베를린 강하작전에 쓰기 위하여 아껴둔다. 그래서 결정된 사단이 17공수사단.

 

결과-이 17공수사단은 채 땅도 디뎌 보기 전에 1735명이 사망하고 6600명이 부상당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지만 B집단군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

패튼 장군이 루르 공업지대를 공격, 마지막 남은 도이칠란트의 전투수행능력을 앗아가 같은 해 5월, 도이칠란트의 항복을 불러왔다.

 

후기-도이칠란트 B집단군이 히틀러 유겐트에 공군 정비병에 노무자에 러시아 포로에 온갖 허섭스레기가 다 동원된 급조된 병력이라고 해도...이정도 피해는 좀 심했다. 그리고 이 패배로, B집단군을 지휘하던 모델 원수는 숲에 들어가 권총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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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수부대(?)

 

한국에는...산악 지역의 특징상 강하작전에서 피해를 볼 가능성이 많아 공수사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특전사가 이 기능의 일부를 수행합니다. 그래서 특전사=공수부대=특수부대라는 백괴스러운 공식이 성립되었고, 심지어 특전사 마크 중에는

'대한민국 공수특전단 KOREA AIRBORNE'라는 명칭을 찾아 볼 수 잇는 것을 보아하니, 한국에서는 공수부대가 특전사의 개념이로 보여지고 있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특전사 아래에 대규모 헬기전력으로 강습작전을 수행하는 203특공여단-구 1공중강습여단-이 있고 심지어 1,3,5 특전여단을 하나로 묶어 공수사단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을 보아하니 한국군에서 공수부대란 명칭이 차지하는 위치는 특전사=공수부대=특수부대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합니다[...]이는 빈대떡을 보고 피자라고 하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라면보고 짬뽕이라거나 짜파게티보고 짜장면이라거나...

 

아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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