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30일 목요일

사학과 전쟁사학

전쟁사학은 일반 사학과 별 다를 바 없는 '사학[史學]의 한 부분'이다.

어느 한 고리를 찾아내고 그 고리와 연결된 다른 고리와 사슬을 찾아 하나의 사슬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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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6일에 시행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실 목표는,

1939년 도이칠란트의 폴란드 침공으로 발발한 2차대전의 종결을 한시라도 빨리 가져오기 위하여 시행된 것이다.

 

하지만 이 작전은 예상대로의 전개로 진행되지 못했고 결국 1944년 이내로 끝내겠다는 생각은 1945년 5월이나 되어서 전쟁이 끝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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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이하 오버로드] 이후 작전계획이 예상되로 진행되었다면 어떨까?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은 더 빨라지고 우리 손으로 나라를 되찾지 못한 아쉬움은 덜했을 것이다.

 

만약 이 오버로드가 훨씬 늦춰졌다면 과연 어떨 것인가?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은 더 늦어질 것이다.

 

헐? 이 무슨 위험한 발언인고...?

 

1945년 8월에 광복군의 한반도 진입 계획이 예정되어 있었던 점을 감안하자면

'독립이 약 1개월만 늦춰졌다면 좋았겠다'

...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409명으로, 두세개 중대병력으로 대한민국에 독립을 가져올 수 있겠는가?

 

이 409명은 미국 OSS에서 훈련받은 특수요원들이였고 일당백이라고 보자.

하지만 17:1로 이긴 사람이 전설이 되는 경우를 봐도 실제 일당백은 거의 불가능이다.

그렇지만 이렇다고 감안아나 해 보자.

그래서 한명당 최소 100명은 처치하여 최대 40900명을 없앨 수 있다고 감안해 보자.

 

당시 미군 한개 사단 병력이 1만 2천-1만 5천 정도였으니 당시 일본군도 한개 사단 병력이 약 1-2만 수준이라고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약 3개 사단 정도를 괴멸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한국 영토 내에 고작 3개 사단병력만이 있을까.

 

게다가 한국 전 공간에 근 25개 사단[...]병력이 산재해 있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사료가 있었던 것을 보니 409명으론 무리다.

 

델타포스 409명으로도 절대무리다.

 

애시당초 광복군이 일본군을 괴멸시킨다는 사안은 넘겨 두고 조선내 일본 주요 요인을 처리하고, 국내 민중의 봉기를 이끌어 내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고 추축해 본다.

하지만 광복군에게 지옥행 급행열차 3등석 티켓을 받은 이런 요인들의 빈 자리는 다시 일본 본토에서 차출되어 배치될 것이다.

 

비록 일본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는 있다고 생각해도 국내 군중들의 봉기를 유도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손으로의 독립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봉기를 유도해도?

좀 힘들다. 진짜로 25개 사단이면 대충 잡아도 50만인데.

 

즉, 바로 이런 목적이다.

우리는 독립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최대한 했고,

광복군 진입으로 일본에 타격을 가해 일본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항복할 빌미를 만들고 연합국에게 그에 관한 노력을 인정받아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더 누릴 수 있었을 것이랄까...

 

어쩌면 임시정부가 정식 임시정부로 미군의 호위 아래 당당히 환국하여 연합국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곧 대한민국 단일 정부가 세워져 한국전쟁도 일어나지 않고, 무엇보다...

 

바로 지금, 일본이 농사나 짓는 아시아의 스위스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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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일반 사학'과  '전쟁사'는 상당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

-...사실 태평양전선에 대하여는 문외한이라 그걸 따져 쓰지는 못해 위에서 주장한 바가 적절치 못할 수 있다. 이 점은 양해해 달라.-

 

내가 전쟁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이렇게 틀어지면 그 후는 어땠을까'하는 궁금함이 전쟁사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게 한 직접적 이유라고 해야 하나.

이것 말고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작업은 남에게 '취미를 정당화하자는 거냐' 하고 쓴소리 들을 바에야

내가 먼저 쓴소리 들을, 욕먹을 여지를 없애버리는 것에 그 주를 두는 작업이다. 오해의 여지가 잇을 수 있어 덧붙인다.-

 

그렇지만 내 주장의 근본은,

일반 사학이나 전쟁사나 다 똑같은 사학 내 범주다.

 

즉, 일반 사학도 약간의 어긋남으로 위와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일반 사학중 하나에서 예를 들자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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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만적이 봉기에 성공했다면?-만적의 의도대로 이루어진 결과-

아마도 최충헌의 사망으로 인한 무신 정권의 기반이 막중하게 흔들림과 동시에 당시 노예제를 가지고 있던 국가중 최초로 노예 자유화가 이루어진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뿐일까...?

군사정권의 갑작스런 몰락으로 인한 고려 잡 무관들의 자리다툼, 최충헌의 사망으로 숨통이 약간 트인 문신들과 한몫 잡아나 보려는 소수분자들의 난립.

그리고 여러 외부적 요인[이를테면 금이라던가 몽고라던가...]으로 인하여 고려 왕조는 최악의 경우로는 멸망하는 사태까지 치닫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 한국 역사 자체가 여기서 종말을 맞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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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전쟁사가 아닌 일반 사학인데도 바로 전쟁사와 연관이 되어 버리는 것,

상당히 재미있지 아니한가.

 

이런 과거를 가지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재미 덕분에 이토록 전쟁사에 매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쟁이라는 제법 흥미진진한 요소가 주를 이루는 전쟁사학을 주로 다루며,

지나간 과거이기에 미래라는 복잡한 요소를 딱히 생각할 필요도 없고,

사학을 가지고 놀기에 제법 고상한 문과생(?) 느낌도 나고.

 

이게 바로 내가 전쟁사 연구를 취미로 가진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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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잠만, 그럼 난 밀덕이 아닌 전쟁사 덕후인가?

└거짓.

2차대전대 미군 공수부대에 관해서는 나름 빠삭하고, 하앍[...]한다.

-하지만 타 분야에서도 빠삭합니다ㅠ-

여기에 덧붙여, 일반적인 밀덕의 특성도 상당량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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